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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조대왕과 뜸(灸)

백승뜸 | 2007-07-25 14:22 | 조회 6802

   - 세종 대왕 -


                       
                        영조대왕과  뜸(灸)

   

  조선시대에 30대에 숨진 임금이 8명이고  60세를 넘긴 임금은 5명
뿐이며 ,  조선시대 37명의 왕비중 32명의 평균 수명이 47.5세 였다고 한다. 조선시대 왕 들의 평균 수명은47세로 보고 되고 있다. 그런데  대표적으로 최장수한 임금이 조선 제 21대왕 “영조대왕(1694-1774- 81세 )” 이시다.

영조대왕은 재위 33년(1757년) 정성왕후 서씨가 사망하자, 2년후 1759년 66세의 나이로 15세의 정순왕후 김씨와 재혼 하여 뛰어난 정력을 과시 했다.  


궁궐에 있는 수많은 여인은 임금의 소유로 임금에게는 “제왕무치”란 특별한 불문율 지위가 있는데 임금이 하는 행동과 언행에는 수치가 없다란 뜻이라서 그런지 15세 처녀와 혼인 했다하여 이상히 보는 관점과 여론이 없었던 듯하다.


그리고, 시대적으로  지금처럼 30대 40대 노처녀가  혼인을 기다리는 것 보다는  신부의 사회적 혼인 적령기가  10대의 나이 였기 때문에  영조대왕께서  10대 처녀와 혼인 했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한국과 중국의 제왕중 여자관계가  상상할수 없을 정도로 매우
복잡하여  결국 여자로 인해 파국을 맞은 제왕도 그리 어렵지 않게 찿을 수 있다.


그렇게 뛰어난 정력가이며 정략가 이기도한   영조대왕도 사람인지라 하늘을 찌르는 권세 로도 육신을 괴롭히는 “질병”만은 막아낼 수는 없었다.


영조실록 20년5월2일(재위20년, 1744년)자  기록에 의하면,  임금의  나이 춘추 50세에  육신의 깊은 질병이 찿아와  침소근처에  뜸을 뜨는 전용 방을 마련하여 “쑥뜸”으로 몸을 다스렸다는 기록과  뜸뜨는 방에 병풍도 없이 명주로 된 요만 있었다는  검소한 방의 구조가 설명 되어  있다.  


실록에 기록된  영조대왕의  "뜸 전용" 치료를 위한 방의 구조로 보아  평소 "뜸"을 소중히 생각 하셨던 것으로 보이며  중병이 생긴 이후 에는   노년이후 줄곳 뜸으로 건강을 유지 하셨던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50세에 "뜸"으로 몸을 다스리시며  16년후  임금의 춘추 66세에  15세의  정순왕후 김씨와  재혼 하여 지칠줄 모르는  정력가, 그리고 정략가로서  81세의 장수를 누리신 건강이 결코, 저절로
얻어진 것이 아니다.



이처럼 뜸의술이 위로는 임금에서부터 아래로는 천민에 이르기 까지이용 되었던 폭넓은 "국민적 전통 의술"인데,  


오늘날  사람들 의식 속엔 뜸이 단순한 요법으로 하찮게 보는 경향도 있다.    이는  "뜸의 진실"을 공부 안했기  때문 인데  이 글을 읽는  제현들 께서   학교에서  정규 상식 과목에  몇줄 만 이라도 뜸의  원리및  작용에 대하여  몇줄  공부한적이  있었던가 ,


우리의 전통문화 다른 부문에 대하여는  "전통 무형문화제" 제도 등이 있어 옛것을 지키려는  의지가 있는데  어찌된 사연인지  "전통 의술"에는 그런 제도가 일체 없다.  
 

뜸은  현대 기술이 밝혀낸 우리의 과학적 지식을 지금도 앞서가고
있다는 것을  임상에서 느낄 수 있다.  


필자의 생각엔  오늘날 뜸 의술이  DNA처럼  인기가 없는 이유로는  뜸의술이  시술시 쑥 이라는 원료가 너무 간단 하여  사업적으로는 " 돈벌이" 에 크게  매력이 없기 때문인듯 하다.


그런데, 뜸의술은  돈과는 관계가 없이   오로지  힘들고 아픈자들을 위해   스스로 움직인다.    뜸은   대체로 스스로 직접 치료하는  국민적 의술이다.    마치, 반딧불이 스스로 빛을 내듯,  아름다운 불빛은  알리지 않아도  저절로 알려지듯,  사람들에 의해 생겨진 길은  알리지 않아도  사람이 통행 하듯

뜸 의술은 이렇게  수천년의  진실한 맥을 이어왔다, 장차 첨단 기술이 있는  미래에는  뜸의술에 대한  국민적 대우가 어떻게 변할까?
 
과거에도 그랬듯 뜸의 은혜를 받은  국민들 사이에서  감동을  주는 의술로  더욱더 알려질  것이다.


줄기세포 사업은  어렵게 세포를 배양 했다 하여  몇천만원 에서 부터  억대의 돈을 받을 수 있는 사업적 매력이 있는데,  뜸 한번에
쑥값  몇백원이  소요 되는 것이 유리알 처럼 뻔한데  돈 벌이가
되겠는가.  


수명이 짧았던 다른 임금들은  뜸의술을 상용치 않았는데, 영조대왕은   노론과 소론의 치열한 붕당의 대립을 해소 시켰고, 금주령, 사치풍조의 금단의 조치.  청계천 준설,농업정책, 백성에게 고통을 주는  여러가지 제도를 고치는 개혁등   정력적인 정치적 수완, 그리고 장수의 비결은 어디에서 왔을까,    



서기 6세기전  중국  제나라때  황실 어의 이며  명의 화타와  더불어  중국 최고의  명의로  꼽히는  "두제"가 저술한 "뜸 전문 의서'  "편작심서"에는 늘 "뜸"을 해두면  질병 없이 100년을 살 수 있다고 하였는데  치병의 효과 순위를  "제1은 뜸 이요, 제2가 침이고, 제3은  약이라 하였다"


황실 어의 "두제"는  나무도 숯을 구우면 천년이 가도 변치않고
흙도 토기를 구우면 천년이 불후 하며 인생도  뜸을하면 심신의 원기를 튼튼하게 함으로써  장수하게 된다고 하였다.
그는 인생도 늙었다고 해서  자연 죽는 것이 아니고, 결국 병이
사람을 죽게 만들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기록에 의하면 중국 태원인(太原人) 왕초(王超)는  군인출신으로 산중에서  이인을 만나  상기 편작심서의  뜸법을 배웠다.
왕초는 산적이 되었고, 나이 칠십에도  정력이 강장하고  여색을 탐하는 음욕이 왕성하여  수시로 민가로 내려와  일시에 10 여성을
겁탈 하므로 결국 체포되어  사형을 받게 되었다.

사형집행전   형무관이 왕초에게 묻기를 " 너는 70의 나이에도 정력이 강장하니 무슨 비방이라도 있느냐"고 물었다.
왕초는 질문에 답하기를  수년동안 "뜸"을 하였더니  정력이 과잉 하여져 본의 아니게 범죄를 저질렀다고 말 하였다.

왕초의 사형 집행후 전신이 차가워 졌는데도  배꼽 아래 단전에
더운 기운이 남아 있어 단전을 째고 보니  살덩이도 아니고 그렇다고 뼈도 아닌 하개의  더운 덩어리가 나왔다고 한다.

이 같은 뜸법이  오늘날  세계보건기구(WHO)에서 검증되고, 그효과가 인정되어  공식 인증서를 통해  회원국에  인류의 보건 의료자원으로  이용 할 것을 공식 권장 하였는데,  뜸 요법이 쑥에 불을 붙여 피부에 올려놓고 하는 방식이므로  쑥이타는 냄새.연기, 피부화상으로 인해 불편한점이 상존 히므로  미용을 중시하는 현대에
더욱  멀어진 감도 있으나  뜸의 인구는 날로 늘어나고 있는 상황이다.


최근  "해외에 소재하고 있는 한국 의학지식 1차 조사"에서 파악된
기록에 의하면  중국 중의과학 도서관 소장 목록에 1515년 조선에서 간행된 목판본 2권중  1권은 잃어 버렸고 1권이 소장된 뜸과침 전문의서 "침구집서(鍼灸集書)"가  발견 되었다.
이책에서 저자는  뜸과 침에서 뜸자리를 아는것이 중요 하다고
강조 하고 있다.


위의 그림은 우리의 글과 말인 "훈민정음"등  수많은 업적을 민족의
커다란 유산으로 남기신 조선 제4대 임금 "세종 대왕"의 모습이신데,   수명은 40을 갓 넘기 시었고,  여러부인과  18남 4녀를 두시었다.


백성을 위한 대 개혁가 이며, 정략가인  영조대왕께서 "뜸"을 항시 애용 하였던  건강 생활 방식에 깊이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이글을 읽는  제현들 께서는  재삼 폭넓은 지적 확인을 위하여  인터넷 검색어  쓰는 란에  "쑥뜸과 세계보건기구" 를 쓰고  검색해 보시기를 바라며  검색 싸이트 야후 에서  미국  식품의약품 관리청 " FDA"를  검색해 보면  공식 인증된 뜸과 침에 관한 자료가  많다.
1998년 1월27일 세계보건기구(WHO)는 오랜기간 검증을 거쳐 뜸의
유효한 효과를 공식인증서를 통해 발표하여 세계각국에 보건의료 자원으로 이용 할 것을 공식 권장 하였다.  




“金尺 뜸 의료기”의술은 종래의 쑥이타는 냄새, 연기등 불편한 뜸법을 현대과학으로 개선  쑥이 타는 냄새, 연기가 없이  뜸을 옷을 입은채로 회음,항문에  뜸을 하는  의료기 발명으로  유명하여 졌다.
 
발명한 이래 10여년 이상 경험 한바에 의하면,   이미 사용한 의료 소비자들 께서  오래 사용 할수록  절묘한 의료기 라고 칭찬이 대단하다.  
그리고, 소비자 스스로 친지,이웃에게 "金尺 뜸 의료기"를 전도하는  의료기 이다.  

뜸은, 뜸을 하는 만큼  뜸의 가치를 누구에게나  거짓 없이 꼭 보여준다.    사람은  어제의 약속을  어길 수는 있어도,  뜸은 내가 뜸을  한 만큼은   절대 배신을 안 한다.  

                                         
                                                     글: 목 관호